●한복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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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22-11-16 01:12본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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직선과 약간의 곡선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우며, 특히 여자 옷은 짧은 저고리와 넉넉한 치마가 어울려 옷차림이 단정하고 아담하다. 그후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에는 옛 사기(史記)나 고분벽화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, 대체로 유고(袴)와 상(裳)포(袍)를 중심으로 한 복장이었으며, 여기에 관모(冠帽)대(帶)화(靴) 또는 이(履)가 첨부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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설명
한복
한민족(韓民族)의 고유한 의복.
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한민족 고유의 의복으로서 조선옷이라고도 한다.
고(바지)는 용도에 따라 폭과 길이에 변화가 있었는데, 양복바지와 같이 폭이 좁은 궁고(窮袴:細袴)와 지…(생략(省略))
레포트/인문사회
●한복
●한복
다.
유는 저고리로서 상체의 옷이고, 고는 바지, 상은 치마로서 하체의 옷이며, 여기에 머리에는 관모를 쓰고, 허리에는 대를 띠며, 발에는 화 또는 이를 신어 포피(包被)로서의 의복의 형태를 갖추는 동시에, 그 위에 두루마기로서의 포를 더함으로써 한대성(寒帶性) 의복 곧 북방 호복(胡服) 계통의 의복을 나타낸다. 예복과 평상복이 나뉘어 있으며 남녀별 성인과 어린이용, 계절별로 나뉜다. 이에 있어 유(저고리)는 곧은 깃에 앞을 왼쪽으로 여몄으며[左], 소매가 좁고[筒袖], 길이는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것으로, 오늘날의 승복 `동방`과 비슷한 것이었으며, 허리에 띠를 둘렀는데, 특히 깃도련소맷부리에는 빛깔이 다른 천으로 선()을 둘렀다.
한복의 역싸
고조선시대에 이미 초의생활(草衣生活)에서 벗어나 칡과 삼으로 짠 옷감을 사용하고, 전잠(田蠶)과 직조의 기예가 늘어감에 따라 의류文化(문화)에 진전을 보여주었다.
이후 china과 교류가 잦아지면서 china복식의 영향을 받아 좌임이 우임(右)으로 변하고 소매도 넓어지는데[寬袖], 선은 오늘날에도 회장끝동 등으로 남아 있다 이 저고리를 신라에서는 위해(尉解)라고 일컬었는데, 오늘날 저고리를 우티우치라고 하는 방언(方言)도 이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, 저고리라는 표현은 조선 세종(世宗) 2년(1420) 원경왕후(元敬王后) 선전의(選奠儀)에 `赤古里`라는 말로 처음 나온다.